최근 KBS의 역사저널에서 이지함을 다루어서 그런지 토정비결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이지함은 의약·점·천문·지리·음양·술서 등에 모두 능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초가집도 아닌 흙담 움막짐에서 청빈하게 살면서 토정이라는 호까지 붙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근처 도로가 공사중이라서 평일에는 차가 좀 막히더군요. 이지함은 고려말 대학자였던 목은 이색의 6대손으로 그 가문에서는 유명한 학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특히 이지함은 물욕을 모두 이겨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박연폭포·황진이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리웠던 서경덕을 스승으로 모셨던 토정 이지함은 임진왜란때 병조판서였던 백사 이항복을 제자로 두었고 율곡 이이와 남명 조식을 친구로 두었던 이지함은 상당히 독특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 넙적바위는 이지함이 타고 다니던 돌배라고 합니다. 원산지조차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의 바위인데 이 돌의 존재로 인하여 이지함이 항해의 영웅이라는 전설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솔성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로 사용되던 바위랍니다.
간단하게 이지함 선생의 가계도와 조상들에 대해 적어두었습니다.
이지함 선생의 묘에 대한 설명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도 예언했고 자신의 처가에 닥칠 화까지 미리 알았다는 이지함은 자신의 친구가 올바르게 역사를 기술했다가 죽은 것을 보고 과거에 대한 생각자체를 버렸다고 합니다. 많은 백성들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기도 했던 이지함은 그래서 많은 예측과 조언을 해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이지함의 묘로 걸어 올라갑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지 길이 나있더군요. 묘 하나는 정말 잘쓴것 같습니다.
이 묘가 바로 이지함 선생의 묘입니다.
앞에 비석을 읽어보니 이지함의 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세개의 낮은 산이 보입니다. 저런 세개의 봉우리를 둔 것이 좋은 묘자리라고 하더군요. 저 너머에는 보령 앞바다가 보입니다.
동자석이 아주 귀엽네요. 이 곳에 있는 묘들은 모두 동자석이 꼭 묘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비오면 물이 담기겠네요.
이지함은 비범한 능력을 가졌지만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팔도를 유랑하면서 다양한 흔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작은 배를 타고 제주도를 여러번 왔다갔다 했지만 어떤 풍랑을 만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적당한 능력이 아닌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유람할 수 밖에 없나 봅니다.
56세가 되어서야 강원도 포천현감으로 첫 벼슬길에 올랐으나 자신의 뜻을 펼칠수 없자 1년만에 그만두고 다시 유랑하다가 61세에 충청도 아산 현감으로 벼슬길에 올랐는데 백성들이 못살고 못 먹는 것을 보고 온양고을에 걸인청이라는 집을 짓고 노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다가 그곳에 수용하고 짚신을 만들게 했다고 합니다. 그냥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먹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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