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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1,000)/한국여행(충청)

계백장군의 혼이 담겨 있는 논산의 요충지의 황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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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장군으로 잘 알려진 논산에는 여러 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둘레 830m. 해발 264m의 산봉에서 남향한 비탈을 긴 마름모꼴로 에워싼 사모형(紗帽形)의 옛 성인 황산성은 이번에 처음 올라가 보았습니다.

황산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마을이 있고 오래된 고목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안쪽으로 오면 정자도 보이고 쉼터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황산성의 아래로 흘러내려오는 물이 상당히 깨끗합니다. 

황산성 둘레길에는 약수터도 있는데요. 약수터에서 물은 마셔보지 못했지만 이곳에서는 맑은 물이 솟아나왔다는 기록들은 있습니다. 

 황산성은 황성(黃城)·북산성(北山城)·성황산석성(城隍山石城)이라고도 옛 문헌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황산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읽어봅니다. 


황산성에 올라가면 관동리, 덕암리, 표정리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경사도가 있는 곳도 있지만 걷기에 편하게 바닥에 길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 황산성은 계백장군의 진이 자리했던 곳이라고 하다. 

논산에도 밤나무가 상당히 많네요. 작지만 알찬밤이 이곳에 많이 떨어져 있네요. 이제 밤을 수확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황산성은 자연지세를 최대한 이용하였으며 북서쪽으로 멀리 바라다보이는 노성산성(魯城山城)이 산봉으로 가로막혔음을 극복하기 위하여 북문터에서 300m쯤 북쪽 산봉우리에 작은 보루를 두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더 올라가면 산행길이 나옵니다. 계백 장군의 마지막 격전지인 황산벌을 중심으로 논산에는 백제시대의 산성들이 곳곳에 분포돼 있습니다. 

백제의 성곽문화가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것은 당시 전투에서 이곳 산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황산성은 문터가 사방에 있는데 남문 쪽이 가장 낮으며, 문의 안쪽에 우물과 건물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 황산성의 성벽은 내탁(內托 : 속을 단단히 다지고 겉을 쌓는 일)이 많으나 기본적으로 내외협축(內外夾築 :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 등을 쌓는 것)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황산의 우리말의 표현은 ‘눌메’라고 하는데요. 당시에 식수원으로 사용했던 이 샘터는 물이 연중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황산성을 둘러보고 다시 아래로 걸어서 내려가봅니다. 지명에는 옛날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데요. 둘레길 중간의 관동리는 황산벌 전투당시 나이 열여섯 살의 화랑 관창을 목 베인데서 연유한 지명이라고 합니다. 황산벌 전투당시 신라군에 맞서 분전한 끝에 산중고혼이 된 백제군들의 주검이 매장된 송정리 1구의 시장골 (屍葬骨)은 말그대로 시신이 매장된 곳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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