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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1,000)/한국여행(충청)

서산의 역사흔적 송곡서원, 김두징 묘비, 둔당리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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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지역에 자리한 역사적인 흔적으로 송곡서원과 김두징 묘비, 둔당리 지석묘는 모두 근거리에 있는 역사적인 유적입니다. 송곡서원은 송곡서원앞에 심어져 있는 향나무가 더 아름다워서 더 유명하기도 합니다. 1693년(숙종 19)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신보(鄭臣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곳이 송곡서원입니다. 

 

조선세종때 심었다는 이 향나무는 바로 단종의 폐위를 보고 심었다는 나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무려 수명이 600여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향나무는 크게 자란 것이 많지가 않아서 건물을 지을때도 아주 귀하게 사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향나무는 이렇게 가지가 수평으로 퍼지며 침엽과 인엽을 함께 가지는 나무는 뚝향나무와 똑바로 나무 기둥이 올라가는 섬향나무가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송곡서원앞에 서서 양쪽에 심어져 있는 향나무를 바라보는 느낌이 고즈넉하고 좋습니다. 이곳의 사우에는 서편에서부터 정신보·정인경·유방택·윤황·유백유·유박순·유윤·김적·김위재의 순으로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송곡서원에서 멀지 않은 서산시 인지면 남정리 산 116-5에는 김두징묘비가 있습니다. 

1674년(현종 15) 이른바 제2차 예송인 갑인예송(甲寅禮訟)의 결과, 송시열 등에게 오례(誤禮)에 대한 책임이 주어지자 서인계 유생들이 송시열을 변명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이때 연명으로 참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문인석이 세워져 있는 김두징의 묘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는 향촌에 거주하면서 유생들과 계(稧)를 조직해서 곡물을 마련해 이를 자본으로 이식(利殖) 활동을 해서 그 이익으로 문방구를 조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중 흉년이 들어 대출받은 사람이 이를 갚지 못하자, 김두징이 나서서 이를 갚아주고는 그 문권을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일명 메주바위라고도 불리는 서산둔당리지석묘는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 산 25-6에는 청동기시대의 흔적인 지석묘가 있습니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가 3.8m, 너비 3.0m, 두께 0.6∼0.9m으며, 평면은 말각방형(抹角方形)을 하고 있으며, 남-북방향으로 장축(長軸)을 이루고 있습니다. 

원래는 2기의 지석묘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당시 1기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 지석묘는 1986년 11월 19일 충청남도 지방지정문화재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소소하면서도 그 의미가 있는 서산의 역사흔적 송곡서원, 김두징 묘비, 둔당리 지석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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