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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당리지석묘

서산에 남겨져 있는 청동기시대의 흔적 둔당리 지석묘 안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서산 둔당리의 얕은 야산에 있는데, 원래는 2기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1기가 파괴되어 없어졌고, 지금 남아 있는 고인돌도 일제시대에 도굴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산의 둔당리 지석묘의 이정표를 보고 안쪽으로 들어가봅니다. 둔당리라는 지명은 나중에 다시 알아봐야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서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뚜껑돌을 덮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안쪽으로 얼마나 들어갔을까요. 어디에 둔당리 지석묘가 있는지 계속 살펴보면서 들어갑니다. 드디어 서산의 둔당리 지석묘를 발견하였습니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에 성행하여.. 더보기
서산의 역사흔적 송곡서원, 김두징 묘비, 둔당리 지석묘 서산지역에 자리한 역사적인 흔적으로 송곡서원과 김두징 묘비, 둔당리 지석묘는 모두 근거리에 있는 역사적인 유적입니다. 송곡서원은 송곡서원앞에 심어져 있는 향나무가 더 아름다워서 더 유명하기도 합니다. 1693년(숙종 19)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신보(鄭臣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곳이 송곡서원입니다. 조선세종때 심었다는 이 향나무는 바로 단종의 폐위를 보고 심었다는 나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무려 수명이 600여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향나무는 크게 자란 것이 많지가 않아서 건물을 지을때도 아주 귀하게 사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향나무는 이렇게 가지가 수평으로 퍼지며 침엽과 인엽을 함께 가지는 나무는 뚝향나무와 똑바로 나무 기둥이 올라가는 섬향나무가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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